생산성 혁신으로 근로시간 단축 걱정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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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직원 수 30명인 철근 상세설계 업체, 더부엔지니어링은 2014년 유연근무제 도입을 시작으로 올해 현재 '근로시간 단축'을 안착시킨 대표적 건설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25일 서울 문정동 더부엔지니어링 사무실 내 휴게공간에서 김용희 대표(사진 맨 앞)과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안윤수 기자) |
“줄어드는 근로시간이 직원의 행복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회사의 발전을 위한 경영진과 직원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현장에 비로소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착 이후에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엿새 앞둔 25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재 철근 상세설계 업체인 더부엔지니어링을 찾았다. 기자와 만난 김용희 더부엔지니어링 대표의 표정에서는 왠지 모를 여유가 묻어 나왔다.
이 회사는 총 직원 30명으로, 다음달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되는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권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김 대표의 여유는 이 때문만은 아니다. 이 회사는 이미 자체적으로 도입한 근로시간 단축 시스템을 올해 완전히 안착시켰다. 덕분에 야근을 반복하는 다른 설계 업체들과는 다른 사무풍경을 보여준다. 생산성은 높이고 직원 이직률은 크게 낮춘 비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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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대표.(사진=안윤수 기자) |
김용희 대표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더부엔지니어링 대표 이전에는 동종 업계 최상위 기업을 돌며 ‘월급쟁이’로 사회생활을 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0년 삼풍백화점에 입사했다. 이후 바로크가구로 옮겨 가구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출산으로 휴직하게 됐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삼성물산 분양팀 계약직 ‘주부사원’으로 재취업했다. 주부사원임에도 뛰어난 실력과 실적을 보인 그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런 그가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2006년 더부엔지니어링을 직접 맡아 10여년 만에 철근 상세설계 수위 기업으로 키웠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대 스타시티 등 굵직한 초고층빌딩 건축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인력 의존도가 높은 설계업체 특성상 잦은 이직과 높아지는 인건비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실패한 유연근무제
“회사를 그만둔 직원들을 몇 년 후에 만나봤습니다. 그만둔 뒤에 시간이 제법 지났기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상과 달리 돈 때문이 아니었다. 야근이 반복되는 근무환경이 먼저였다. 일에 질려버린 직원들은 동종 업계로 이직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준비나 학업 등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떠났다.
게다가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이 집중되는 구조도 문제였다. 이는 일을 많이 맡은 유능한 직원들이 먼저 회사를 그만두는 결과로 이어졌다. 생산성 하락은 불가피했다.
“생산성 제고를 위해 2014년 유연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환경을 자유롭게 바꾸면 업무 효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죠.”
유연근무제 환경에서는 가장 일찍 출근한 직원과 가장 늦게 출근하는 직원 간 최대 4시간가량의 시차가 벌어졌다. 이는 협업이 많은 설계 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연근무제 도입 당시 팀 간 협업이 가능한 시간은 사실상 하루 4시간 정도였다.
습관적인 야근도 계속되면서 수당과 교통비, 식대까지 인건비 증가 폭이 가팔랐다. “이대로 가면 망하겠구나. 망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김 대표는 당시를 회고했다.
개성공단 진출과 철수
김 대표가 선택한 대안은 다름 아닌 개성공단이었다. 회사의 매출 신장에는 한계가 있는 탓에 인건비라도 절감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유연근무제 도입 1년 만인 2015년 8월에 더부엔지니어링은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설계업체에 있어 개성공단 입주는 혁신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한 우수 인력들을 본사의 3분의1 수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30명가량의 북한 기술자들과 함께 반등의 기회를 기대했다. 더 주고 싶어도 제도상 급여를 올려줄 수 없어서 서울에서 옷이나 신발, 생필품을 사서 북측 직원들에게 선물하곤 했을 정도로 김 대표의 만족도는 컸다.
그러나 잠시였다. 2016년 2월 남북관계가 급랭하면서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개성공단 진출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저비용 고효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던 회사의 실적은 주저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성공단 폐쇄 직후인 2016년 2분기엔 매출액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업무 시스템 혁신
또다시 본사 인력만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유연근무제의 부작용과 낮은 실적을 떠안은 김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이미 도입해 놓은 유연근무제를 철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직원들이 이 같은 회사의 방침을 받아들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근로시간 모니터링 프로그램 도입을 고민했다. 여러 프로그램을 두고 고민하던 중 김 대표가 선택한 것은 헝가리 기업이 개발한 ‘잡컨트롤(Job Control)’이었다. 직원들의 업무상황을 모니터링해 총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잡컨트롤 도입 당시에는 유연근무제를 철회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직원 반발이 있었어요. 인권 침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사장이 직원을 감시한다’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죠. 하지만, 회사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감시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업무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공개되고 기록되기 때문에 개별적인 유연근무가 가능하다.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중복되는 일을 하지 않고 협업 효과도 높일 수 있다.
“처음에 반발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이 시스템 없이는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회사와 직원 모두 ‘윈윈’한 것이다. 잡컨트롤에 크게 만족한 김 대표는 이제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 직접 공급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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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엔지니어링의 매출 추이. (자료 : 더부엔지니어링) |
생산성 향상이 성장으로
결과는 바로 반영됐다. 2016년 2분기 저점을 찍은 매출액은 점진적으로 상승해 잡컨트롤 도입 이후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016년 2분기 대비 67%나 늘었다.
회사 실적이 반등한 배경에는 직원들의 생산성 개선이 있었다. 2016년 2분기 1900만원에 불과하던 직원 1인당 매출액은 잡컨드롤 도입 직후 2300만원으로, 도입 1년여가 지난 올해 1분기 현재 2900만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회사의 직원 수는 고작 1명 늘었다. 생산성 개선이 확연히 증명된 셈이다.
유연근무제만 시행할 때 직원들의 평균 회사 체류시간 12시간 중 실제 근무시간은 4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직원들의 평균 회사 체류시간은 9시간30분이며, 실제 근무시간은 7시간30분에 달한다. 회사 체류시간이 줄어든 덕분에 야근 등 각종 수당으로 나가는 비용도 줄었다.
더부엔지니어링에 재직 중인 A과장은 “총 근로시간이 줄어 수당도 소폭 줄었지만, 설계업체 종사자로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돼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며 “평균 임금도 높은 편이고 연차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장기근속을 원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장 기술자를 포함한 더부엔지니어링 직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0시간 남짓이다. 내달부터 시행되는 주당 최대 52시간을 여유있게 준수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도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이유다.
일하는 습관 바꿔야
그는 다른 기업들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잡컨트롤을 적용한다고 바로 되는 건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일하는 습관을 바꿔줍니다. 일하는 습관을 바꿔야 생산성이 높아지는데 습관을 바꾸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도 이전에는 습관적인 야근이 많았습니다. 저녁 먹고 몇 시간 더 일하고 택시 타고 집에 가는 비효율적인 일이 반복됐지만, 이런 습관을 바꾸게 됐습니다.”
그는 이어 “근로시간 단축을 우선적 목표로 삼기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노사의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높은 생산성을 보유한 회사는 자연히 많지 않은 근로시간으로도 높은 실적을 낼 수 있습니다.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겠지만, 이번 정부의 정책이 건설업계 ‘노동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개성공단으로의 복귀 가능성 때문이다.
“사무실을 그대로 두고 왔습니다. 당장이라도 가면 바로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김 대표의 생산성 혁신이 북한 땅에서도 실현될지 흥미로운 대목이다.
권성중기자 kwon88@